올포워십

7장. 하나님은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

7장. 하나님은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

예향지기 | 입력 : 2025/09/1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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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나님은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2014년 세월호 침몰로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바다에 갇혀 목숨을 잃었고, 2022년에는 이태원 압사사고로 젊은 청년들이 거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날 이후, 유가족들과 이웃들은 지금도 묻고 있습니다. “왜 그날,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가? 왜 그 참사를 막지 않으셨는가?”


이런 고통 앞에서 신은 침묵하고, 인간은 무너집니다. 그래서 신이 있다면 왜 침묵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신정론(Theodicy)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두 번쯤은 죽고 싶을 만큼 쓴맛을 경험합니다. 건강, 관계, 경제, 감정다양한 문제들이 우리를 짓누를 때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능하시다면, 왜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혹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이토록 악이 넘쳐나는 세상을 보니,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거나, 전능하지 않거나, 선하지 않다.”


이 질문은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에서 시작되어 수천 년 동안 반복되어 온 인간의 근본적인 고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진 비극들 속에서 더욱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악을 제거할 수 있고, 선하시다면 악을 제거하고자 하실 텐데, 왜 악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무신론자들은 이 논리를 따라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로 기독교는 동일한 현실을 보며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성경은 악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아니며, 하나님은 악을 제거하는 대신 악을 이기시는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신다고 말합니다.


먼저, 악은 실체가 아니라 결핍입니다. 마치 어둠이란 어떤 물질이 아니라 빛이 없는 상태이며, 추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열이 사라진 자리에서 느껴지는 현상이듯, 악도 선의 실체가 아니라 선하심의 부재로 생겨난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악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궁극적 선으로부터 멀어진 결과로 나타난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창조하신 세상은 본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는 평가를 받았고, 질서와 선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진정한 인격적 관계를 위한 자유의지를 허락하셨고, 인간은 그 자유를 사용해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며 죄와 고통을 불러왔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왜 하나님은 애초에 악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남기셨을까요? 왜 자유의지를 주셔서 세상이 이토록 망가지도록 내버려두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진짜 사랑은 결코 강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 없는 사랑은 복종일 뿐입니다. 로봇처럼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존재는 사랑할 수도, 사랑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계나 프로그램이 아닌, 응답할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응답의 가능성 속에는 언제나 거절의 가능성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강제로 복종시키는 권능이 아니라, 응답을 기다리며 관계 맺기를 원하시는 겸손한 사랑입니다. 이 점에서 역설적으로, 악의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제합니다. 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지만,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가능성입니다.


물론 이런 설명이 고통의 현장에서 당장의 위로가 되진 않습니다. 논리가 아픔을 덜어주진 않습니다. 현실은 여전히 아프고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십자가로 오셨다고.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폭력적인 그날,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며 악을 정면으로 끌어안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멀리서 지켜보는 분이 아니라, 직접 고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악을 제거하지 않되, 악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한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위대한 구원의 문이었습니다. 기독교는 고통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십자가라는 가장 깊은 고통을 신앙의 중심에 둡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침묵 속에 버려두는 듯 보이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고난은 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고통 너머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묻습니다.

왜 이런 고통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 물음 속에서도 기적처럼 한 가지 고백이 피어납니다.

그 고통 안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고통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눈물은 여전히 흐르고,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결코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눈물 흘리시며, 함께 무너지고, 함께 일어서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은 우리를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길로 이끌지만, 그 길 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다시 마주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은 지금도, 여전히, 나와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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