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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믿음이 있어야지만 기독교인인가?

9장 믿음이 있어야지만 기독교인인가?

예향지기 | 입력 : 2025/10/1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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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믿음이 있어야지만 기독교인인가?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저는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약을 먹으며 치료를 받고 있고, 신앙의 여정도 그만큼 조심스럽고 느리게 걷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가장 힘들었던 말 중 하나는 믿음이 없어서 그래요였습니다. 마치 내가 지금 아픈 이유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듯 들렸습니다. 그 말은 제 마음을 더 무겁게 했고, 스스로 죄책감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제 믿음이 죽은 걸까요? 정말 이것이 믿음의 문제일까요?

 

이 질문은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부담을 안고 살아갑니다. 기독교인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특히 오늘날의 신앙 문화 안에서 사람들은 믿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불편함을 느끼곤 합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을 느낌이나 성과로 이해합니다. 기도 중에 울고, 찬양 중에 감동이 있어야 믿음이 있다고 여기거나, 믿음이 있으면 병이 낫고 일이 잘 풀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감정이 메마를 때도 있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묻습니다.

나는 믿음이 부족해서 이런 걸까?”

 

또 다른 이들은 믿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사용합니다.

저 사람은 믿음이 없어 보여.”

그렇게 신앙 생활하면 믿음 있는 거야?”

 

그렇게 믿음은 누군가를 분류하는 선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기독교인답지 않다는 정죄감에 시달리며, 믿음이 자격처럼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점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우울증 속에서 감정은 말라 있었고, 기도는 막혔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날들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런 저에게 믿음이 있다는 말을 하기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닫힌 것 같던 제 안에 오래된 다락방의 작은 창같이 한 군데 열려 있는 창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창이었어요. 그 창을 통해 아주 미세한 바람과 빛이 들어왔고, 저는 그 창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견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걸 믿음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그것을 하나님이 제게 열어주신 사랑의 창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붙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저를 놓지 않으셨다는 사실 안에 살아 있었습니다. 제게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진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자칫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믿음조차도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내가 스스로 끌어내야 하는 열정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내가 얼마나 확신하느냐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감정이 뜨겁지 않거나, 찬양 중에 아무런 감동이 없으면 나는 믿음이 약한가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믿음을 이성적으로 납득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믿음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느끼죠. 또 다른 사람들은 믿음을 결단과 의지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너질 때,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될 때, 스스로를 책망합니다.

이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믿음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성취가 아닙니다. 감정도, 논리도, 결단도 믿음의 본질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하실 때, 그 사랑 앞에 감사로 고백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눈물로,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예배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그 자체로 드러나는 삶의 방향성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조차,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감각이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결핍을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이 없다고 느끼는 마음 자체가,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그분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영혼의 반응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큰 확신 속에서 믿음을 말합니다. 그들의 고백은 또렷하고, 그들의 열정은 선명합니다. 그러나 모든 믿음이 그렇게 강렬하게 표현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믿음을 품고 있고, 어떤 이는 의심과 질문 속에서 주님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이는 침묵만이 가능한 상태에서도 예배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지킵니다.

 

그 믿음은 불꽃처럼 타오를 수도 있고, 얼음처럼 차분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은 한 가지 모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모습을 아시고, 각 사람의 상황과 성향에 맞게 주신 믿음의 모양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과 믿음을 비교하며 자신을 자책하거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이 내게까지 도달했다는 사실 앞에 고개를 드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기에 믿음을 심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 믿음을 지키고 자라게 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신앙이고,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믿음이 있어야지만 기독교인인가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기독교인입니다. 그 사랑은 내가 흔들릴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무너질 때에도 나를 붙들어주는 사랑입니다. 믿음은 그 사랑 안에서 싹트는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확신이 흐릿해도, 감정이 말라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창이 열려 있다면, 당신은 이미 그 사랑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인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린 사람입니다. 그 사랑을 향해 눈을 들 수 있다면, 당신은 오늘도 하나님 안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믿음을 내가 얼마나 강하게 붙드는가로 생각하십니다. 기도할 때 감동이 없거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라고 자책하시기도 하지요. 하지만 성경은 믿음조차도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2:89).

믿음은 성취나 감정이 아닙니다. 뜨겁게 울면서 기도할 수도 있고, 아무 말 없이 예배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모습 안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붙든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놓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약해 보여도, 심지어 나는 믿음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향한 작은 창이 열려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기독교인은 믿음을 완벽하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린 사람입니다.

결국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믿음을 심어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우리를 기독교인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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