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은 쓰실까?14장.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은 쓰실까? 고린도전서 1장 27절 “하나님께서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에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 하시며”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돌아보며 묻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쓰임받을 만한 사람인가?” “연약하고 부족하고, 넘어지고 실수도 많은 나인데, 하나님은 왜 나를 부르셨을까?” “하나님의 계획은 정말 나를 포함하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은 단지 자기비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과 나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정직하게 느낄 때 생겨나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뛰어난 사람보다 언제나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능력 있어서 부름받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모세는 말이 느렸고, 기드온은 지극히 약한 자라고 말했으며, 다윗은 형들보다 하찮게 여겨졌고, 베드로는 성질 급한 어부였습니다. 바울조차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쓰셨고, 그 연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마르다는 섬김으로, 마리아는 향유로 예수님께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죽어 있었습니다. 아무런 고백도, 봉사도, 예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살리셨고, 살아난 그 나사로를 통해 하나님은 강력하게 일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많은 유대인들이 나사로로 인해 예수를 믿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그것이 두려워 나사로까지 죽이려 합니다. 나사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증거가 되었고, 부활의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놀라운 위로가 됩니다. 내가 무엇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때로는 아무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어도, 하나님은 나를 통해 여전히 일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정폭력과 빈곤 속에서 자란 한 자매는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던 시절, 교회 주일학교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그 사랑 앞에서 울었고, 결국 교사가 되었고, 지금은 또 다른 상처 입은 아이들의 삶에 예수님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상처를 지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다른 이들의 상처를 감싸 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숲속에서 길 하나밖에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숲 전체를 보십니다. 우리는 지금 이 길이 왜 돌아가는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고 계시며, 보호하고 계시며,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고난은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위한 ‘예비 과정’일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고난을 겪었지만, 그 고난이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또한 제자들의 눈에는 미련하고 악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가장 지혜롭고 능력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신다는 건, 나를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나의 연약함 위에 자기 능력을 덧입히시고, 나의 실패를 통해서도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그분이 미리 모든 걸 아시고도 “내가 너를 선택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두렵고 자신 없지만, 그 부르심 앞에 다시 “예”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 자체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뜻 안에서 자아를 실현하며 기쁘게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자기 만족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참여하는 기쁨 안에서만 참되게 유지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히 ‘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걷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아 살아가는 모든 날은 하나님의 은혜와 목적 안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일을 해내지 않아도, 놀라운 능력을 드러내지 않아도, 살아 있다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섬김으로, 마리아는 향유로 주님께 드렸지만, 나사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죽었다가 살아났을 뿐이었습니다. 그 존재 자체가 부활의 증거였고, 많은 이들이 나사로로 인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우리 안에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통해 당신의 은혜를 드러내시기 위해. 때로는 말 없는 침묵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들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순간이 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열매보다 존재를 먼저 기뻐하시며, 우리의 능력보다 은혜 안에 머무는 우리의 태도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누군가는 벽이고, 누군가는 창이며, 또 다른 이는 보이지 않는 기초입니다. 어떤 자리도 하찮지 않고, 어떤 사람도 쓸모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존재로 하나님의 집을 이루고 있으며, 그 자체로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처럼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도 하나님이 쓰실 수 있을까?’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 하신다’(고전 1:27).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람보다, 연약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모세는 말이 느렸고, 기드온은 자신을 지극히 약하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형들보다 하찮게 여겨졌고, 베드로는 성질 급한 어부였습니다. 바울조차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특히 나사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그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죽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를 살리셨고, 살아난 나사로를 통해 많은 이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요 12:11).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가 부활의 증거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한계와 침묵조차 하나님 손에 들려지면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하나님께 쓰임받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을 해내는 것보다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를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우리의 존재가 이미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이며, 그 자체로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