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제적 시점 #3] 너희는 K-CCL을 준비하라기독교 문학의 잃어버린 동시대성을 찾아서2026년 부활절을 즈음하여 기독공보에서 창간 80주년 기념 기독문화대상을 발표했다. 이번 기독문화대상의 시 부문에서는 ‘빛의 결로 빛은 소망’이 당선되고, 소설 부문에서는 ‘파트모스’가 당선됐다. 처음 도입된 영상 부문에서는 아무런 당선작을 선정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기독문화대상 당선작이 처음에 기독문화대상을 공모할 때 그 공모 취지에 온전히 부합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2025년 12월 말에 기독공보는 기독문화대상을 공모하며 ‘기독문화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고, 문학과 영상, 신앙과 문화가 만나는 자리에서 복음의 가치와 시대의 질문을 담아낼 창의적이고 진실한 작품’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독문화대상의 당선작이 과연 기독문화의 미래를 함께 열고, 시대의 질문을 담아낼 창의적이고 진실한 작품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특히 소설 부문에서 당선된 ‘파트모스’는 21세기 한국교회의 이야기가 아닌 1세기 초대교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파트모스’와 현재 한국교회는 대략 2,000년의 차이가 난다.
물론 교회의 역사에서 1세기는 신약성경의 집필과 초대교회의 형성과 같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기독교 출판계에 1세기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1세기는 교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이지 현재 한국의 기독교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없다. 어찌 보면 한국의 기독교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1세기가 아니라 21세기이다.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 문학은 ‘초대교회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한국교회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지난 2024년에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 작가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작품 속에 온전히 녹여냈기 때문이다. 즉 한 작가는 작품을 집필하며 ‘동시대성’을 놓치지 않았다. 만약에 한 작가가 ‘동시대성’을 상실하고 삼국시대, 고려시대와 같은 과거의 역사에 천착했다면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을지 모른다.
한국의 기독교 문학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게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디디고 지금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지방소멸, 저출산 고령화, 기독교 1인출판사 약진, 일하는 목회자, 신학교의 위기 등 현재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문학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기독교 문학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과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표면적으로 천국에 관해 언급하였지만, 그들은 작품 속에서 당대의 사회상과 교회상을 과감하게 반영했다. 그래서 『신곡』을 읽으면 14세기 초반 로만 가톨릭이 보이고, 『천로역정』을 읽으면 17세기 후반 영국 교회가 보인다. 과연 한국의 기독교 문학에서 21세기 한국교회가 보이는 작품은 어디에 있는가? 언제부터 한국의 기독교 문학은 동시대성을 상실하고, 시대와 상관없는 외로운 섬이 되고 말았는가?
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 K-CCL을 시작하자. K-CCM이 동시대성을 놓치지 않고 음악으로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것처럼, K-CCL 역시 동시대성을 놓치지 않고 문학으로 교회와 사회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 한국의 기독교 문학은 ‘현실을 직면할 결심’이 필요하다. 비록 한국교회의 현실이 부끄럽고 안타까워도 어찌하랴? 그 교회가 바로 주님이 사랑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인 것을. 혹여 누가 알겠는가? 모든 씨보다 작은 K-CCL의 씨앗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하게 될지 말이다. 고로 귀 있는 자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는 K-CCL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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