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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AI와 함께, 다시 문화를 읽다

AI로 본 문화 단상, 그 첫 문을 열며

손하람목사 | 기사입력 2026/04/21 [23:49]

연재를 시작하며] AI와 함께, 다시 문화를 읽다

AI로 본 문화 단상, 그 첫 문을 열며

손하람목사 | 입력 : 2026/04/2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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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하람 목사입니다.

 

AI를 처음 설교 준비의 자리로 끌어들였을 때,

제 안에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낯섦이라기보다,

오래 붙들어온 어떤 신앙적 태도를 건드리는

불편함에 가까웠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며 텍스트와 씨름하는 일, 성경 한 구절을 붙들고 며칠씩 머무는 일, 그 느린 시간을 통과하는 일이 목회자의 기본 훈련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질문을 던지면 곧바로 답을 내놓는 존재를 들여놓는 순간,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 설교 준비의 자리 - 텍스트와 질문이 만나는 순간(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 거부감이 아니라, 내가 감당해야 할 사유의 무게를 다른 존재에게 넘겨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신학적 불안이었습니다.

설교는 단순한 정보 정리가 아니라, 말씀 앞에서 한 사람이 씨름한 흔적이어야 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AI가 그 과정에 개입하는 순간, 그 흔적이 흐려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각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AI는 제 자리를 대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던 지점들을 다시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미 잘 안다고 생각했던 본문, 이미 설교해 본 이야기, 이미 정리해 두었던 교안의 문장들 앞에서 AI는 전혀 다른 각도의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그 질문이 언제나 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얕았고, 때로는 엉뚱했고, 때로는 틀렸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저는 다시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읽고, 다시 확인하고,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그 지점에서 저는 하나의 사실을 조금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AI는 답을 대신 주는 존재라기보다, 오히려 질문을 다시 열어주는 도구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 질문을 다시 여는 자리 — 텍스트와 사유가 만나는 순간(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저는 교회 현장에서 교육과 예배, 문화미디어 사역을 맡고 있는 목회자입니다.

동시에 Th.D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실제 성도들의 삶과 예배를 돌보아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현실을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I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 긴장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습니다.

 

효율은 깊이를 해치지 않는가.

 

빠름은 거룩함을 약화시키지 않는가.

 

기계가 도운 언어에도

진실한 울림이 담길 수 있는가.

 

알고리즘이 짜내는 시대에

예배와 설교는 무엇으로 자기 생명을 지켜낼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늘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시대 속에서 목회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드러내는 질문들이었습니다.

 

이 연재는 바로 그 질문들을 붙들고 가는 기록입니다.

Claude, ChatGPT, Gemini, NotebookLM, Perplexity 같은 도구들이 실제 목회 현장에서 등장하겠지만, 이 글이 말하고 싶은 핵심은 기술 소개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도구들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불쑥 떠오르는 영화 한 장면, 문학 작품 속 한 문장, 인문학적 질문 하나를 목회적 언어로 다시 풀어보는 데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어느 순간 한 편의 소설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교안을 만들다가 오래전에 읽었던 동화가 다시 이해될 때가 있습니다."

"예배를 기획하다가 한 영화의 장면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순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기능으로만 끝나지 않고, 결국 우리의 감각과 해석을 다시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I는 단지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유 방식과 표현 방식, 나아가 문화 읽기의 방식까지 바꾸고 있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연재는 AI를 무조건 환영하거나 무조건 경계하는 글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이에서 더 천천히, 더 정직하게 묻는 글이 되고 싶습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반대로 AI가 의외로 목회를 도운 순간은 어디였는지,

 

두려움도 기대도 감추지 않고 써보려 합니다.

어떤 순간에는 기술의 유용함에 놀라겠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인간의 고유한 책임과 영적 무게를 다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목회는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 결국 목회는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한 영혼 앞에 서는 일입니다.

 

예배를 준비하고,

고통을 듣고,

기도하며,

함께 기다리는 일입니다.

  

이 본질은 어떤 기술이 발전해도 쉽게 대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미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하거나 두려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분별하며 사용하고, 사용하면서 다시 성찰하고, 성찰 속에서 목회의 언어를 새롭게 다듬어 가야 합니다.

 

이 글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목회자와 사역자들에게 어떤 결론을 강요하는 글이 아니라, 함께 질문하는 동행의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신학적으로는 가볍지 않되, 실제 현장에는 유익한 글. 기술을 말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향하고, 문화를 말하지만 끝내는 복음의 자리를 묻게 하는 글. 그렇게 한 편씩 써 내려가 보려 합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 필자소개 ]

 

손하람 목사 (분당한신교회 부목사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Th.D. 과정)
교육국·예배·문화미디어 사역을 담당하며, 목회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도구로 삼되, 결국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는 목회의 본질을 붙들며 오늘의 문화를 읽어가고 있습니다.

 

 

"기술을 넘어, 다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는 목회의 길을 묻습니다."

 

 

손하람 목사 : 디지털 명함 바로가기

AI와 함께하는 더 깊은 목회 홈페이지 : www.haram.a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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