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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본 문화 단상 3] Claude는 어떤 대화 상대인가

하브루타의 눈으로 본 AI

손하람목사 | 기사입력 2026/06/07 [20:26]

AI로 본 문화 단상 3] Claude는 어떤 대화 상대인가

하브루타의 눈으로 본 AI

손하람목사 | 입력 : 2026/06/0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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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에 나가 사람들과 대화했다


소크라테스는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고라에 나가 사람들을 만났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상대가 답하면 다시 물었고, 그 답에 또 물었습니다. 그 끝없는 문답 속에서 상대방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 것인지를 발견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과정을 산파술이라고 불렀습니다. 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는 일.

 

 

"그가 남긴 것은 문장이 아니라, 대화였습니다."

 

▲ 유대인들의 하부르타



유대인의 하브루타도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둘이 짝을 지어 같은 텍스트를 놓고 서로 질문하고 답하고, 다시 반박하고 다시 묻습니다. 정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질문을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탈무드는 이 방식 위에서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았습니다. 결론이 아니라 대화 자체가 유산이 된 것입니다.

 

저는 판교에 위치한 교회에서 교육국 총괄 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입니다.

 

 

교사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하브루타를 주제로 자료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자료를 찾다가 Claude에게 물어봤습니다. 하브루타의 역사적 배경, 탈무드 학습 전통과의 연결, 기독교 교육에서의 적용 가능성까지 꽤 상세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자료는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마치고 나서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하브루타 자료를 만들면서, 정작 하브루타를 하지 않았구나."

 



하브루타의 핵심은 짝입니다. 나와 동등하게 텍스트 앞에 앉아, 나의 답을 받아치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각도에서 질문을 던져오는 존재. 그 긴장 속에서 사유가 깊어집니다.

 

Claude는 그런 의미에서 꽤 흥미로운 상대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저는 Claude와 문답식으로 대화합니다.

본문을 던지고 질문하면 Claude가 답합니다. 그 답에 다시 반박하면 또 답합니다. 형식만 보면 하브루타와 닮았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Claude는 제 말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강하게 주장하면 대체로 수용합니다. 반박보다는 보완을 선택합니다. 설득당하는 척은 잘 합니다만, 진짜로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는 드뭅니다.

 

▲ 탈무드의 이야기 중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랍비가 오랜 학습 동료를 잃고 슬퍼하자, 제자들이 새로운 토론 상대를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새 상대는 랍비의 말마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오히려 더 슬퍼하며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내 말에 반드시 스물네 가지 반론을 제기했소. 그래야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었는데."

 

동의는 편안합니다. 그러나 배움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됩니다. 하브루타에서 짝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반론을 제기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도 같은 텍스트 앞에서 씨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던지는 질문에는 그 사람 자신의 막힘이 담겨 있습니다. 그 막힘이 나의 막힘과 부딪힐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Claude에게는 그 막힘이 없습니다. 텍스트 앞에서 막혀본 적 없는 존재가 막혀 있는 나를 도울 때

그 도움은 정확하지만, 어딘가 비어 있습니다.

 

▲ Claude는 어떤 대화 상대일까?



그렇다면 Claude는 어떤 대화 상대인가.

 

저는 요즘 이렇게 생각합니다. Claude는 하브루타의 짝이라기보다, 하브루타를 준비시켜 주는 조력자에 가깝다고. 소크라테스가 아고라로 나가기 전에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그 시간처럼. 텍스트를 미리 정돈해 주고, 배경 지식을 채워주고, 내가 어떤 질문을 들고 진짜 대화의 자리로 나갈지 생각하게 해주는 존재.

 

그런데 이 비유에는 한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워밍업이 너무 편안해지면, 본 게임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Claude와의 대화가 익숙해질수록, 저는 가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착각을 합니다. 자료가 정리됐고, 구성이 잡혔고, 표현도 다듬어졌으니...

이제 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그것은 준비가 아니라, 준비의 대체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스승과의 대화를 기록해서 남겼지만, 그 기록을 읽는 것이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목소리, 살아 있는 눈빛, 살아 있는 반론은 텍스트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AI와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잘 정돈된 대화라도, 그것은 진짜 대화의 기록이 아니라 진짜 대화를 위한 준비입니다.

 

▲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스승과의 대화를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세미나 당일, 저는 AI가 정리해 준 자료를 가지고 교사들과 함께 직접 하브루타를 했습니다. 같은 성경 본문을 앞에 놓고, 짝을 지어 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상대방이 틀린 말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저는 잠깐 멈췄습니다. Claude에게 그 질문을 했다면 깔끔한 답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의 얼굴을 보면서, 그 분이 진짜로 무엇을 묻고 있는지를 느끼면서

 

저는 다른 방식으로 대답해야 했습니다.

 

"상대방이 틀렸다고 느끼는 순간, 내가 왜 그것을 틀렸다고 느끼는지를 먼저 물어보세요.

그게 하브루타입니다."

 

그 순간은 Claude가 만들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저도 하브루타가 무엇인지를 그날 처음으로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평생 책을 쓰지 않은 이유가,

어쩌면 그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배움은 기록 속에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사람을 통과해서 옵니다.

 

 

 


 

 

[ 필자소개 ]

 

손하람 목사 (분당한신교회 부목사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Th.D. 과정)
교육국·예배·문화미디어 사역을 담당하며, 목회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도구로 삼되, 결국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는 목회의 본질을 붙들며 오늘의 문화를 읽어가고 있습니다.

 

 

"기술을 넘어, 다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는 목회의 길을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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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함께하는 더 깊은 목회 홈페이지 : www.haram.a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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